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용군 진행곡 (문단 편집) == 내용 == [[중일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군]]과 싸우러 떠나는 중국군을 위해 작곡되었다. 이 곡은 원래 [[국민정부]] 시대의 [[상하이]](上海)에서 히트친 [[영화]] 풍운아녀(風雲兒女)의 주제가로, 곡의 원 제목은 반만주[* [[만주국]]을 의미한다.] 항일 의용군의 행진곡(反满抗日义勇军进行曲)이었다. 다만 풍운아녀가 상영된 지 얼마 안 돼서 이 곡의 작곡가인 톈한은 국민당 정부에 4개월간 구금당했는데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 대표적으로 등장인물 중 하나인 천중이(陈重奕)등이 있다.]이 [[사회주의]] 혁명가였다가 투옥되었다는 내용이 초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youtube(6icFnCSF2yA)] 영화 '풍운아녀'의 한 장면.[* 러닝타임 총 1시간 30분 짜리의 영화 마지막 장면.] 가사[* 자막을 보면 현재의 [[정체자]]와 [[간화자]]가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간화자를 최종적으로 만들긴 했지만 사실 [[중화민국]] 시대인 1934년에 정부에서 제1비(제1차) 간화자표[[https://zh.wikipedia.org/wiki/%E7%AC%AC%E4%B8%80%E6%89%B9%E7%AE%80%E4%BD%93%E5%AD%97%E8%A1%A8|#]]라는 것을 발표했었을 정도로 당시에 간략화 시도들이 여럿 있었다. 제1비 간화자표의 시행은 이런저런 비판이 많아서 결국 [[장제스]]가 1936년에 취소하긴 했지만... 이 자막은 원래 영화에 삽입되었다기보다는 아마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960년 전후로 만든 것 같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한자를 간화할 때 한 단계가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서 간화하였기 때문에 현재 간화된 글자 중 당시에는 간화되지 않은 글자도 있는데, 그 과도기 시대의 출판물들도 일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초창기에는 간화자가 공식 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 중국 대륙에서 쓰이는 한자는 대만과 큰 차이가 없었다.]도 적혀 있다. 원래 가사의 의미는 혼란했던 [[중일전쟁]] 시기에 "외세로부터 억압받는 중화의 민중이여, 일어나서 단결하여 적을 무찌르자"는 내용이다. 여기서 원래 적은 [[일본 제국]]을 뜻한다. 그런데 공산당식 해석으로 보자면 '노예되기 싫은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적'은 [[부르주아]] 혹은 [[자본주의]] 국가들로 볼 수도 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를 거둔 공산당 측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면서 대국가(代國歌)[* 정식 국가가 제정되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하는 국가라는 의미. 그러나 정식 국가가 오랫동안 제정되지 않았기에 나중에 이 곡이 정식 국가가 되었다.]로 지정했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금지곡이 되었다. 최근 중화인민공화국([[홍콩]]과 [[마카오]] 포함) 선수들이 대만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경기 시작 전의 의례 또는 우승했을 때 시상식에서 연주되는 일이 많아졌다. 중국에서도 이 곡의 존립이 위태로운 때가 있었는데, 작사자인 톈한이 극작가로서 중국 [[당나라]]시기 경극인 사요환(谢瑶环)을 연극하다가 공산당의 인민일보에서 "톈한이 연극한 사요환은 독초이다."라는 비판을 실으며 싸움이 벌어젔기 때문이다. 인민일보와 해방일보는 혁명적인 현대 연극을 거부하고 옛 중국의 유산만을 연구한다고 비판하였고 계급성을 모호하게 만든다하여 반당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받았고 톈한 역시 자신을 공격한 [[4인방]]과 적들에 대해 당은 인민과 반대되는 짓거리를 한다며 비판하다가 결국 베이징 수비대에 체포되어 구금, 평소 [[당뇨]] 등의 병을 앓던 톈한은 감옥에서 사망하고 엄청난 비난, 비판이 이루어지고 작품들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금지된 기간에는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비공식국가를 부르도록 했는데, 비공식국가의 제목은 [[동방홍]]이다. 물론 톈한이 비판의 대상이지 녜얼은 아니므로 이 노래도 가창 없이 곡만 연주되기는 했고, 대외적으로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으로 계속 쓰였다. 문화대혁명 종결 후인 [[1978년]]에는 가사를 중국 공산당과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것으로 변경하기도 했지만, 이후 톈한이 복권되면서 [[1982년]]에 원래 가사로 되돌렸다. 바뀐 사유가 참 가관인데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여' 라는 부분이 반란을 선동할 우려가 있다는 [[덩샤오핑]]의 주장(...) 때문이었다. 당연히 전국적으로 '''"항일전쟁의 정신을 벌써 잊은거냐!"'''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이후 2004년, 헌법 수정에 의해 정식 국가로 지정되었다. 한편 이 곡은 한중교류가 거의 없었던 1980년대에는 [[조선]]([[광주광역시|광주]])출신 작곡가인 [[정율성]]이 작곡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정율성은 [[인민해방군]]의 공식 군가인 [[중국인민해방군군가|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였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이 곡을 부를 때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불러야 한다. 앉아서 부르거나 재미로 부른다거나 흥얼거리는 등의 행위는 국가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로 엄중히 처벌된다. 이것의 예외는 거의 인정되지 않아서, 휠체어에 앉은 노약자나 장애인조차도 일어서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이상, 국가 연주 시 반드시 기립해야 하고, 제창 역시 마찬가지이다. 천안문광장 열병식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공훈 노병들이 거동이 굉장히 불편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부축을 받아 기립한 상태로 국가를 제창하는 모습이 자주 찍힌다. 하지만, 천안문광장 열병식은 특수한 행사기 때문에 저런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고, 일상적인 행사에는 국가 연주와 제창 때문에라도 기립하기 어려운 이들은 아예 행사 참여가 배제되는 게 현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aqTw_VLoGo|실제로 중국의 인터넷 스타 양카이리가 이 곡을 장난스럽게 불렀다가 구류형에 처해진 바 있다.]] [youtube(C8h7SqA549Q)] '''[[중국중앙전시대]]에서 사용하는 영상.''' [* 1분 4초부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